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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력사소설 《숙적》 제1부 (제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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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701회 작성일 23-12-07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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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1 회)

제 2 장

왕관없는 녀왕

7

(2)


대례복인 면복을 입고 문무백관들이 부복해있는 어전으로 들어선 고종이 자기의 옥좌에 가 앉았다. 옥좌앞에 한쪽으로 치우쳐있는 대원군의 의자는 비여있었다.

그대신 옥좌옆에 여느때 없던 발이 드리워있었는데 거기에 있는 옥탑에 명성황후가 앉아있었다.

명성황후는 요즘 대원군이 최익현의 탄핵상소로 하여 울화증에 걸려 자리에 드러누운 절호의 기회를 리용하여 오늘의 어전회의를 열도록 고종을 꼬드겼던것이다.

이마너머로 오늘따라 류다른 당상의 광경을 흘끔흘끔 쳐다본 부복한 조정의 중신들은 심상찮은 일이 생겼음을 짐작하고 숨들을 죽이고있었다.

비여있는 대원군의 자리를 보고 좀 주밋거리던 고종이 이윽고 자세를 가다듬고나서 입을 열었다.

《여봐라, 전동부승지 최익현을 대령케 하라!》

고종이 짐짓 무게있는 소리로 령을 내리자 전의가 받아외웠다.

《찬의, 전동부승지 최익현을 대령케 하라!》

찬의가 또 그 말을 받아웨쳤다.

전동부승지 최익현 대령하랍신다.》

조정의 중신들이 두줄로 늘어선 가운데로 최익현이 걸어들어와 어전에 곡배하였다.

《상감마마, 전동부승지 소신 최익현이 어명을 받들어 대령하였소이다.》

고종은 잠시 자기앞에 꺾인 절을 한 최익현을 내려다보았다. 몸집이 체소한데다가 여윈 그가 허리를 꺾고 서있는 모양은 흡사 조그마한 소년같아보였다. 저처럼 작은 사내가 언감 그처럼 무엄한 상소를 하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숨가쁠 지경으로 팽배한 분위기가 어전을 휩싸고있었다.

발뒤에서 명성황후가 쪼프린 눈길로 고종을 주시하고있었고 중신들도 이제 어떤 처분이 내릴가 하는 호기심과 긴장감으로 하여 손에 땀들을 쥐였다.

고종의 낯에 얼핏 괴로운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이제 자기의 비답 한마디에 모든것이 뒤죽박죽이 될 판국이였다. 그러고보면 임금의 자리란 참으로 헐치 않은 자리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갈마들었다. 지난날에는 섭정국태공인 아버지의 정사를 곁에서 구경만 하면 되였다. 그러나 이제는 국사의 크고작은 모든 일에 대해 자기가 직접 지시를 내려야 하였다. 이것이 바로 친정이란것이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울긋불긋 단청이 그려진 서까래며 천정에 눈길을 주었다. 그의 입에서는 저도 모를 한숨이 새여나왔다.

최익현을 살리자니 친아버지인 대원군을 죽여야 하고 대원군을 살리자면 최익현을 죽여야 했다. 그는 임금이요, 친정이요 하는 이 거치장스럽고 괴로운노릇을 활 집어던지고싶었다. 대원군이 섭정할 때는 그렇게도 쉬워보이던, 어찌 보면 아이들 장난같아보이던 정사를 자기가 직접 하려니 왜서 이처럼 힘겨운가.

《상감마마!》

문득 곁의 발뒤에서 낮으나 서리발 찬 목소리가 고종의 귀전에 마쳐 왔다.

그 소리에 흠칫 놀란 고종은 자세를 바로잡고나서 이미 외워둔듯한 말을 아무런 감정표시도 없이 서둘러 쏟아버리고말았다.

최익현 듣거라. 네가 올린 상소는 실로 충곡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또한 과인을 경계하는 글뜻이 더욱 가상하다. 그러므로 과인은 너에게 호조참판(나라의 재정을 맡아보는 관청의 두번째 자리.)의 벼슬을 제수하노라.》

고종은 무거운 짐이라도 벗어놓은듯 말끝에 한숨을 내쉬였다.

명성황후도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실상 이 순간을 초긴장속에 보낸것은 누구보다도 명성황후, 그 녀인이였다. 그는 실로 대원군과의 판가리싸움에 나선듯한 심정이였다.

최익현이 점잖게 사은숙배하였다.

하지만 이 순간 만조백관들은 기절초풍하듯 놀라 굳어진 상태였다.

그중에서도 대원군의 심복들은 경악에 찬 표정으로 서로 돌아보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좌의정이 채머리를 떨듯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앞으로 나서더니 읍을 하고나서 입을 열었다.

《상감마마, 최익현의 상소는 조정을 깎아내려 자기의 이름을 내기 위한 요망한 소리인줄로 아뢰오.》

그 말에 동조하여 우의정도 한발 앞으로 나서며 아룄다.

최익현이를 국문하여 죄를 밝힌 뒤에 먼섬으로 귀양보냄이 마땅한줄로 아뢰오.》

동감인듯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10년간 손때 묻혀 키운 대원군의 심복, 지지자들이 가만있을리 없었다.

순간 저으기 당황해진 고종이 저도 모르게 발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당황하기는 명성황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런 순간도 예견하여 미리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있던 그는 지체없이 고종에게 단호한 대책을 세우도록 조언을 주었다. 이런 때의 임금을 보필하고 협찬하자고 발뒤에 앉아있는것이 아닌가.

《전하, 좌의정, 우의정을 파직시켜야 하옵니다.》

《그렇게야 어떻게?…》

고종은 또 망설이였다.

문무백관들의 눈길이 발뒤에 앉은 자기에게 쏠리고있음을 느낀 명성황후는 저도 몰래 주먹을 불끈 쥐였다. 그는 고종의 입을 통해 자기의 의지를 기어이 관철시켜야 함을 절박하게 깨달았다.

《기강을 세우셔야 합니다, 전하!》

눈살이 꼿꼿해서 내뱉은 명성황후의 말은 고종뿐만아니라 어전에 시립한 모든 관리들이 다 들리도록 크게 울렸다.

명성황후의 말에 힘을 얻은 고종은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자못 근엄한 표정으로 언명했다.

《듣거라. 최익현을 국문하여 먼섬으로 귀양보내기를 주장한 좌의정 강노와 우의정 한계원을 파직시키노라.》

고종의 청천벽력같은 말에 강노와 한계원은 일시에 꿇어엎드려 애걸복걸하였다.

《상감마마!…》

그들의 비굴한 태도는 고종으로 하여금 동정대신에 도리여 불쾌감과 혐오감을 느끼게 하였다.

저 사람들이 원래 저런 속물들이였는가.

《여봐라, 전 좌의정 강노와 전 우의정 한계원이를 끌어내가라.》

강노와 한계원이는 망지소조하여 이마에서 피가 나도록 더더욱 머리를 조아렸다.

《상감마마…》

그러거나말거나 전의는 임금의 령을 무뚝뚝하게 받아외웠다. 찬의는 또 그대로 전의의 말을 받아 웨쳤다.

《갑사, 전 좌의정 강노와 전 우의정 한계원이를 끌어내가랍신다.》

예잇!》

쇠비늘에 수은을 입힌 수은갑옷에 전이 있는 투구인 첨주를 쓰고 큰칼을 찬 갑사들이 서슬푸른 기색으로 들어와 발버둥치는 강노와 한계원이를 질질 끌고나갔다.

끌려나가며 부르짖는 그들의 애절하고 비통한 울부짖음이 전각안에 긴 여운을 남기며 메아리쳤다.

시립한 만조백관들은 가슴이 서늘하여 고패를 떨구고 눈길들이 갈팡거렸다.

하지만 발뒤에 눈을 감고 그린듯이 앉아있는 명성황후의 가슴속에서는 기쁨의 메아리가, 환희의 물결이 끝없이 일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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